손익준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연구소장
손익준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연구소장

정유재란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참혹하게 무너졌다. 수백 척의 전선이 불타고, 조선의 바다는 왜군에게 내어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절망에 빠진 선조는 이순신에게 수군을 철폐하고 육전에 전념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이순신은 단호히 맞섰다.

"신에게는 아직 전선 열두 척이 남아 있사옵니다. 미천한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른바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의 장계이다.

열두 척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이 끝까지 바다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국가의 의지였고, 해양 주권을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선언이었다. 그 신념은 명량대첩이라는 기적을 낳았고, 결국 나라를 살렸다.

40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 해군이 바다를 떠나려 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해군사관학교를 내륙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국민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결정이 현실이 된다면 이는 단순한 학교 이전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군의 정체성과 미래를 다시 묻게 하는 중대한 국가적 사안이다.

해군사관학교를 단순 교육기관으로만 치부해선 안된다. 대한민국 해군의 정신적 본산이며 미래 해군 장교를 길러내는 요람이다. 더욱이 해군사관학교가 진해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자인 손원일 제독은 광복 이후 해군을 창설하면서 장교 양성기관을 가장 먼저 세웠고, 그 터전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모항인 진해를 선택했다. 이는 행정 편의 때문이 아니라 철학 때문이었다. 해군은 바다에서 배우고, 바다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손원일 제독은 대한민국 해군을 충무공 이순신의 해양정신 위에 세우고자 했다. 생도들은 단순히 군사학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충무공의 정신을 이어받는 대한민국 해군의 후예로 성장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래서 해군사관학교는 단순한 캠퍼스의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정신이 살아 있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특히 진해는 대한민국 해군의 심장이다. 군항과 함대, 해군교육사령부, 정비창과 각종 부대가 함께 자리하고 있으며, 생도들은 매일 바다를 바라보고 함정을 접하며 해군의 문화를 몸으로 체득한다. 바다는 해군에게 배경이 아니라 교실이며 실습장이고 삶의 현장이다. 해군사관학교를 바다에서 떼어 놓겠다는 발상은 의과대학을 병원 없는 곳으로 옮기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농과대학을 논밭 없는 도심 한가운데 이전하자는 주장과도 같다. 현장을 떠난 교육은 본질을 잃을 수밖에 없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지금의 해군사관학교가 교육적으로나 운영상으로 특별한 문제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이 반드시 필요한 국가안보상의 불가피한 이유 또한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이처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중대한 결정을 충분한 국민적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해군 장교들이 진해에서 꿈을 키웠다. 그들은 바다를 배우고, 바다를 지키겠다는 사명을 가슴에 새기며 대한민국의 바다를 수호해 왔다. 해군사관학교는 건물만 이전한다고 함께 옮겨지는 기관이 아니다. 그 안에는 역사와 문화, 전통과 공동체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세계 주요 해군 강국의 해군사관학교 역시 대부분 바다와 함께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해군이라는 조직의 본질을 반영한 결과이다. 이순신은 선조의 명령 앞에서도 바다를 포기하지 않았다.

바다를 떠난 海士, 이순신이 통곡한다

손원일 제독은 광복의 폐허 속에서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하며 진해에 해군사관학교를 세웠다. 한 사람은 나라의 바다를 지켜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바다를 지킬 인재를 길러낼 터전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지켜 온 해양정신을 스스로 허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해군사관학교 이전은 단순한 부지 이전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해양국가로 설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바다와 등을 돌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사적 선택이다. 효율성과 행정 편의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안보와 전통, 교육의 본질,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선조는 수군을 없애려 했고,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지켜냈다.이제 우리는 그들이 지켜낸 바다를 스스로 떠나려 하고 있다.

바다를 떠난 해사. 그것은 대한민국 해양정신의 후퇴이다. 충무공 이순신과 해군 창설자 손원일 제독이 오늘의 결정을 바라본다면 과연 무엇이라 말씀하시겠는가. 그 답을 생각하는 순간, '바다를 떠난 해사, 이순신이 통곡한다'는 제목은 더 이상 수사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