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일과 삶의 블렌딩 & 하모니 - 최정훈 경제복지여성위원장

20년쯤 전에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교회 전도사님이었는데, 전도사로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동시에 2곳 대학원에서 각각 다른 석사학위 과정을 다니고, 그 와중에 여자친구를 만나 연애를 해서 결혼까지 했다는 이야기였다. 


‘워라밸’이라는 단어로는 담지 못한 ‘거룩한’ 수준의 시간 관리 사례였다.


사실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이라는 워라밸은 일과 삶이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 해석되기도 한다.


마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개념으로, 일하는 시간과 삶의 시간을 천칭에 올려놓고 비교한다. 여기에서 ‘삶’이라는 단어는 ‘개인 생활’을 뜻하는데, 개인의 여가, 가족과의 시간, 자기 개발을 위한 활동, 힐링을 위한 휴식 등을 포함하는 시간을 충분히 보장 받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개념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워라밸의 핵심은 일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최적의 균형을 추구하는 행위라 할 수 있겠다. 일률적으로 일과 시간을 적용하기보다는 각 개인의 가치와 기준에 맞추어 스스로 일상을 조율할 수 있는 상태가 중요한 요소이다.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본인의 취미,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일치하는 상황을 뜻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삶의 균형이 더 많은 업무시간을추구하는 방향으로 맞춰질 것이다. 그 때문에 요즘에는 워라밸이란 개념을 넘어 워라블(Work-life blending), 워라하(Work-life harmony)라는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


일과 개인 생활의 이분법적인 접근을 넘어 상호 보완적으로 섞어 시너지를 내는 용어인데 개인 삶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과 삶이 서로 중첩되기도 하면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놀이가 되는 그런 순간들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하는 시간과 개인 생활의 구분을 없애는 방향으로 회귀해서는 안된다. 덕업일치는 대부분의 사람이 얻지 못한 트로피며 많은 사람이 더 많은 휴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신문 기사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기업들을 일반화하기보다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야근을 당연시하거나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를 넘어서 우리는 주6일 근무에서 5일 근무, 4일 근무로 이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유연근무제와 성과지표제 등이다.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면서 원격근무, 재택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를 시행했었고 결국 일하는 시간의 총량이 아닌 얼마만큼의 성과를 달성했는지가 업무능력 판단의 중요한 지표로써 활용되기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업무의 총량이 그대로일 때 일과시간의 단축은, 시간을 더 압축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숙제를 준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더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줄어든 업무시간의 양만큼 급여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여러 지표를 통해 충분한 휴식이 노동생산성을 높인다는 결과를 보여주지만, 엔데믹 이후 유연근무제를 다시 줄여나가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사용자와 근로자가 바라보는 현상 인식의 차이가 여전히 작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런 와중에 민간기업이 아닌, 경기·대전·충남 등에서 선보였던 공공기관 ‘주1일 재택근무제’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제주도는 7월 중 본청 미취학 자녀를 둔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1일 재택근무제’를 시범 시행하고, 금요일 오후 1시에 퇴근하는 주4.5일제를 도입하여 일·가정 양립을 도모한다고 한다. 워라밸이 일·가정 양립과 저출생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적용된 사례인데 제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모범 사례로 보인다.


다만 그러한 정책들이 일차적으로 근무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만 가서는 안되며, 근무 환경이 워라블·워라하의 개념으로까지 이어지도록 개선하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민간기업 못지않게 공공기관에서도 경직된 근무 환경을 개선해서 일하는 시간이 더이상 스트레스와 고통의 시간이 아닌, 자아실현과 가치·성취감을 고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Work)로 인해 받은 충격을 개인의 시간(Life)을 활용해 회복하고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단순한 패턴은 우리가 기대하는 밸런스(Balance)·블랜딩(Blending)·하모니(harmony)가 아니기 때문이다.  <끝>



창원특례시의회 경제복지여성위원장

최정훈 의원 (진해구 이동, 덕산동, 자은동, 풍호동)



[경남포스트]정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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