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 구조대원들의 사이렌은 멈췄지만 전 마포소방서 구조대원의 김씨(48)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제가 특전사 출신이라 정신력이 강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이후엔 그런 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김씨는 당시 새벽 6시까지 구조 현장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구조라 부르기 어려운 시간이 이어졌다. 생존자를 구하는 대신, 희생자들의 주검을 끝없이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80~90구의 주검을 정신없이 나르던 순간이 아직도 사진처럼 머릿속에 박혀 있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날로 돌아가 버린다.”
참사 이후 김씨는 휴직계를 내고 치료에 매달렸다. 1년 만에 다시 복귀했지만, 출동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이태원 골목이 떠올랐다. 결국 3개월 만에 또 휴직했고, 재복귀 첫날 퇴직을 결심했다.
지금 그는 세 아이를 둔 아버지이자 부산의 일용직 노동자다. 소방관 시절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그에게 소방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기억이다.
“출근길만 돼도 가슴이 조여오고 잠을 설쳤다.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20년 가까이 김씨를 지켜본 지인은 “사고 후 그는 예전 사람이 아니었다”며 “날파리조차 죽일 수 없다며 자전거도 못 탔다. 한 달 동안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퇴직 과정에서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이의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억울했지만 그냥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 사례는 김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인천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소방관 ㄱ씨 역시 이태원 참사 출동 경험 뒤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ㄱ씨는 당시 현장에서 지휘를 맡았고, 참사 직후 우울증 진단과 약을 처방받았다. 그의 방에서는 당시 진단서와 약 봉투가 발견됐다.
2023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구조 활동 뒤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소방관은 무려 1316명에 달했다. 그러나 ‘초기 상담’ 이후 지속적인 관리나 추적 조치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김종수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소방지부장은 “본부 차원에서 상담·치료 지원은 있었지만, 워낙 큰 참사이다 보니 대원들 스스로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컸다”며 “초기 대책 이후엔 사실상 방치됐다”고 지적했다.
“현장은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날에 있다”
이태원 참사 현장은 이미 치워졌지만, 소방관들의 마음속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전사 출신조차 무너뜨린 집단적 트라우마.
김씨는 퇴직한 지금도 여전히 말끝을 잇지 못한다.
“소방관으로는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날에 갇혀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