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를 마친 악양 평사리 들판이 다시 한 번 거대한 운동장으로 변신했다. 11월 22일, 2019년 시작된 ‘평사리들판 논두렁축구대회’가 다섯 번째를 맞아 40개 팀이 흙탕물을 튀기며 공을 쫓는 이색 장면을 연출했다. 들판 위로는 짚으로 만든 공이 이리저리 튀어 오르고, 관람석에서는 웃음과 탄성이 번갈아 터져 나왔다.
대회장을 찾은 한국슬로시티본부 손대현 이사장은 “세상에 유일할 뿐 아니라 발전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손흥민 선수가 시축을 해도 전혀 손색 없는 프로그램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손 이사장뿐 아니라 행사장을 찾은 여러 내외 귀빈들 역시 “독창성과 확장성이 뛰어나다”며 논두렁축구를 새로운 농촌형 스포츠 관광 모델로 바라봤다.

올해 대회에는 일반부 30팀에 더해 관광객 중심 번외팀 10팀이 합류해 총 40여 팀이 출전했다. 하동군이 의도적으로 ‘여행상품형 팀’ 구성을 도입해 관광 연계 가능성을 시험한 결과로, 박진하 관광진흥과장은 “대회의 관광 확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행상품형 팀 구성을 시도했다”며 “그 결과 10팀이 참여했고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난 4회 대회가 30개 팀·1,200여 명 관객 규모였던 점을 떠올리면, 대회가 한층 커진 셈이다.
경기는 초등부·남성부·여성부·혼성부 등 5개 리그로 나뉘어 진행됐다. 잔디구장이 아닌 가을 추수를 마친 논에서, 선수 7명이 한 팀을 이뤄 짚으로 엮은 공을 쫓는 방식이다. 울퉁불퉁한 논바닥 탓에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 ‘실수’가 곧 웃음 포인트가 되고, 관람객은 진지한 승부와 ‘진기명기 장면’을 함께 즐겼다.
행사장 한편에는 악양 대봉감과 지역 농특산물 판매장, 먹거리존, 체험부스가 함께 들어섰다. 논두렁 볼링·줄넘기와 같은 들판형 체험 프로그램이 상시 운영돼, 경기 출전을 하지 않는 관광객들도 짚공을 만지고 던지고 차 보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로컬 여행사들이 운영한 1박 2일 코스에는 평사리 들판과 최참판댁, 동정호, 야생차박물관, 대봉감 와이너리 등이 묶여 하동의 가을‧초겨울 풍경을 함께 보여줬다.
올해 대회의 또 다른 특징은 스포츠와 관광, 민간 기업의 협업이다. 스포츠용품 전문업체 ZD가 경기 용품 후원과 번외팀 구성에 참여했고, 코레일과 연계한 ‘축구+여행’ 패키지에는 이미 100여 명이 신청해 관심을 증명했다. 논두렁축구를 중심에 둔 로컬 여행상품이 실제 판매 단계까지 이어지면서, 하동군이 겨울철 관광 비수기 극복을 위해 고민해 온 ‘체험형 콘텐츠+교통·숙박 패키지’ 모델이 첫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행사 기획·주관을 맡은 주민공정여행 협동조합 놀루와의 조문환 대표는 대회사에서 “향후 10년 뒤인 2035년, 제15회 대회는 세계 35개국에서 3만 명이 참여하는 글로벌 축제로 성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2018년 협동조합 창업 이후 겨울철 ‘텅 빈 들판’을 살려보자는 고민 끝에 2019년 첫 대회를 열었고,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행사를 2023년 다시 시작해 여기까지 이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허투루 들리는 꿈만은 아니다.
하승철 하동군수는 “평사리 들판은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자 하동을 대표하는 문화·경관 자산”이라고 강조하며, “겨울철 관광 비수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논두렁축구대회는 이미 상표등록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평사리가 2022년 세계관광기구(UNWTO)가 선정한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이름을 올린 만큼, 군은 소설과 문학관, 와이너리, 야생차 문화 등과 논두렁축구를 엮어 ‘체류형 관광 루트’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이어 하 군수는 “올해는 대회와 관광을 결합한 여행상품을 처음 선보여 큰 관심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이색 체험형 관광콘텐츠를 더욱 다채롭게 확대해 하동 방문의 즐거움을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논두렁축구대회는 지난해 상표 출원을 마쳤고, 설치미술과 짚조형물, 깃발 퍼포먼스 등을 결합한 ‘대지예술형 축제’로도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대회 리그별 우승팀은 초등부 솔FC, 남성부 별천지녹차팀, 여성부 아싸가오리팀, 혼성부 솔찍히힘들다팀이다. 각 팀에는 상금 50만 원이 전달됐다. 평사리 들판의 진흙 위를 구르며 승부를 겨룬 이 우승팀들은 내년 대회에서 또 한 번 ‘진흙 왕좌’를 지킬 수 있을지 일찌감치 관심을 모은다.
지난해 30개 팀, 1,200여 명 관객이 모였던 제4회 대회가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올해 제5회 대회는 여행상품과 기업 후원이 더해지며 본격적인 ‘글로컬 축제 모델’로 한 단계 올라선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공을 잘 차지 못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즐거운 축구라는 점에서 논두렁축구는 기존 스포츠 관광과는 다른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하동군과 놀루와가 전문 스포츠단체·관광업계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넓혀갈지, 그리고 평사리 들판이 어느 날 정말로 ‘세계 35개국 선수들이 모이는 운동장’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