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준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연구소장(해군사관학교 40기). 교육학박사(경남대 초빙교수)
손익준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연구소장(해군사관학교 40기). 교육학박사(경남대 초빙교수)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에서 참혹한 패배를 당했다. 조선 수군의 전력은 사실상 궤멸했고, 나라의 바다마저 풍전등화에 놓였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이순신 장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남은 전선과 병사들을 다시 모아 명량으로 나아갔고, 결국 열두 척의 배로 기적과 같은 승리를 만들었다.

오늘 대한민국 해군은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가. 정부가 추진하는 해군사관학교 폐교 및 국군사관학교 창설·이전 논의를 바라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바다를 지켜야 할 해군의 요람을 바다에서 떼어내는 것이 과연 미래를 위한 개혁인가. 해군사관학교는 단순한 대학이나 장교 양성기관이 아니다.

해군 장교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동시에, 바다를 이해하고 해군의 정체성과 전통, 그리고 국가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몸으로 체득하게 하는 곳이다. 그런 해군사관학교를 다른 군과 획일적으로 통합하고, 바다와 떨어진 내륙으로 이전한다면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되는가.

첫째, 획일화는 해군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육군·해군·공군은 같은 군이지만 임무와 작전환경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육군은 지상을, 공군은 하늘을, 해군은 바다를 기반으로 국가의 안보를 책임진다. 그렇다면 장교를 양성하는 교육 역시 각 군의 특성과 전문성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합동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합동성이 각 군의 전문성을 없애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각 군의 전문성이 확고할 때 진정한 합동작전이 가능하다.

해군사관학교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다를 이해하고, 함정을 이해하고, 해양작전을 이해하며, 해군만의 전통과 문화를 체득한 장교를 길러내는 것이다.

둘째, 바다 없는 해군 교육은 본질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해군 장교에게 바다는 단순한 훈련장이 아니다. 삶의 터전이며 전장이고, 해군의 존재 이유 그 자체다. 진해 앞바다에서 생도들이 함정을 보고, 항해하고, 해양환경을 직접 체험하며 배우는 교육은 책이나 시뮬레이터만으로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바다의 기상과 파도, 조류와 해무, 함정의 움직임을 직접 경험하면서 얻는 감각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야 한다.

바다를 떠난 해군사관학교가 과연 해군 장교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물론 첨단 시뮬레이션과 AI 기술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실제 작전환경을 경험하는 교육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진다.

셋째, 해군의 전통과 정신을 단절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해군의 정신적 뿌리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있다. 그리고 현대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 과정에는 손원일 제독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다. 해군사관학교가 진해에 자리 잡은 것은 단순한 지리적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과 발전, 그리고 수많은 해군 장교들의 발자취가 축적된 역사적 공간이다. 8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생도가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해군 장교의 꿈을 키웠다. 그 공간에서 형성된 전통과 정신은 건물 몇 채를 옮긴다고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장소와 함께 기억되고, 전통은 현장에서 계승된다. 해군사관학교의 이전은 단순한 캠퍼스 이전이 아니라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와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넷째, 세계 주요 해군의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 해양강국의 해군사관학교들은 오랜 기간 해양환경과 연계된 교육을 중시해왔다. 해군 장교에게 해양에 대한 이해가 핵심적인 전문역량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히려 해양강국을 지향하면서 해군 장교 양성의 핵심 교육기관을 바다에서 멀리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이며, 세계적인 조선·해운 산업을 보유한 대표적인 해양국가다. 무역의 대부분을 바다에 의존하고, 해상교통로를 통해 국가경제를 유지하는 나라가 해군의 전문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해군의 교육 기반을 약화시키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AI·드론 시대일수록 해군의 전문성이 더욱 중요하다

미래전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AI, 무인수상정, 무인잠수정, 드론, 위성, 사이버전, 지능형 함정 등 새로운 전력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군 장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군사기술 지식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바다라는 실제 작전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해양전문성이다. AI가 함정을 운용하더라도 함정이 활동하는 곳은 바다다. 무인체계가 작전을 수행하더라도 바다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미래전의 변화가 해군사관학교의 존재 이유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한 해양 전문교육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이렇게 중요한 결정이라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해군사관학교의 폐교와 이전은 단순한 조직개편이 아니다.

해군의 미래와 국가안보, 지역사회, 막대한 국가재정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그렇다면 결정 과정에서 해군 장병과 생도, 예비역, 군사 전문가, 교육계, 지역주민 등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검증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수십 년 동안 해군사관학교와 함께해 온 진해 시민들의 목소리도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일수록 속도보다 숙의가 먼저다.

일곱째, 막대한 이전 비용과 기존 시설의 활용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

해군사관학교를 이전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교육시설과 생활관, 훈련시설, 체육시설, 부대시설 등 기존 인프라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다.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는 데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고, 기존 시설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용도폐기된다면 그 비용 대비 효과가 과연 충분한지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조직을 통합한다고 해서 반드시 국방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방개혁의 기준은 조직의 단순화가 아니라 전투력의 강화여야 한다. 해군은 바다를 떠나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다. 세계 7위권의 해군력을 갖추고, 조선·해운 강국으로 성장했으며, 인도·태평양 시대의 해양안보 환경 속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바다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해군의 요람을 바다에서 떼어내는 것이 정말 미래지향적인 선택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개혁은 필요하다.

합동성 강화도 필요하다. AI와 첨단기술을 활용한 교육혁신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각 군의 고유한 전문성과 정체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해군사관학교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폐교와 이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해의 바다를 활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안보·AI·무인체계 교육기관으로 발전시키는 길도 있다.

손익준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연구소장
손익준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연구소장

이순신의 바다에서 이순신의 정신을 배우고, 손원일 제독의 해군 창설 정신 위에 미래 해군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이순신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남은 열두 척의 전선을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았다.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 — 아직 열두 척이 있고, 신이 죽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히 하나의 학교가 아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전문성이며, 해군의 정체성이요, 80년에 가까운 전통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 해양안보 역량이다. 바다를 지켜야 할 해군이 바다를 떠나서는 안 된다. 해군이 바다를 잃으면, 대한민국은 해양안보의 중요한 기반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폐교와 이전이 아니라,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논의다. 바다를 잃은 해군은 미래를 잃을 수 있다.

"해군사관학교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은 곧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