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 8월 28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헌정사 최초로 재제청을 요구했다. 대법관 인선이 권력 충돌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된 손 후보자만 반려하고, 이흥구 대법관 후임인 김성수 후보자에 대해서만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했다. 여권은 '사법농단' '제2 사법쿠데타'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일각에선 탄핵 주장까지 제기됐다.

[권력 감시] 대법관 제청 갈등, 모호한 헌법 규정이 권력 충돌 키웠다

문제의 본질은 헌법과 법원조직법이 대법관 제청 절차를 지나치게 모호하게 규정했다는 데 있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명시할 뿐이다. 대통령에게 후보 반려권·재제청 요구권·사전승인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제청 전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합의해야 한다는 규정 역시 어디에도 없다. 반대로 대법원장이 일방적으로 서면 제청할 경우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법적 대응 수단도 명시되지 않았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이 양 권력기관의 충돌을 구조적으로 예정해 놓은 셈이다.

제도적 공백을 방치한 채 정파적 해석만 앞세우면 대법관 인선은 매번 권력 다툼의 장이 될 것이다.

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도 혼란을 키웠다. 법원조직법 제41조의2 제2항은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는데, 이를 두고 추천위를 재구성해 절차를 새로 진행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존 추천위가 이미 추천한 3명의 후보 중 1명을 제청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법원행정처가 추천위원들에게 개별 연락해 추천 절차를 다시 타진한 사실이 국회에서 확인되면서, 대법원 스스로도 법 해석에 혼선을 겪고 있음이 드러났다. 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대법원장이 '존중한다'고만 되어 있어 법적 구속력도 애매하다. 이런 식의 규정으로는 제청권과 임명권의 균형점을 찾을 수 없다.

물론 양측 모두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가 지난 1월 후보 추천을 완료한 뒤 7개월 넘게 제청을 미루다가 8월 18일 대통령과 실질적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서면 제청했다. 김민기 서울고법 판사를 유력하게 검토하던 청와대 입장을 무시한 처사다. 반면 청와대는 현행법상 존재하지 않는 '재제청' 요구로 맞섰다. 2011년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사전 면담 없이 이상훈 대법관 후보자를 서면 제청해 정상 임명된 선례가 있는 만큼, 이번 반려가 과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 공방만 격화될 뿐 헌법적 기준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2028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4명씩 총 12명의 대법관이 증원돼 전체 대법관 수는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난다. 전체 26명 가운데 22명을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중 임명하게 되는 만큼, 유사한 충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8월 24일 추천위 구성의 '법적 맹점'을 개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뒤늦지만 필요한 조치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할 때 조정 절차를 어떻게 마련할지, 추천위 재구성 기준은 무엇인지, 협의 절차는 어느 수준까지 의무화할지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제도적 공백을 방치한 채 정파적 해석만 앞세우면 대법관 인선은 매번 권력 다툼의 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