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 장관이 이틀 전인 9월 2일 반도체에 대해 「표적화되고 신중한 관세 정책」을 예고했다. 하워드 러트닉 장관은 미국 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에는 관세를 낮춰주되 투자에 나서지 않는 기업에는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노트북 등 반도체가 들어간 완제품까지 관세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전해진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미국 공급망에서 갖는 전략적 가치를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소극적 대응만 되풀이하고 있다.

[산업 진단] 반도체 압박, 협상 카드로 써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어제 워싱턴DC에서 「경쟁국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하겠다는 미국의 기존 약속을 언급하며 그 정신에 따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협상 전략이나 대응 카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만은 이미 TSMC 등 자국 기업에 대해 미국 내 생산시설 건설 기간 중 계획 생산능력의 2.5배, 완공 후 1.5배까지 무관세 쿼터를 확보했다. 한국 정부는 대만 사례를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런 식일 수도 있다」며 모호한 답변만 내놨다.

이 사실을 협상 테이블에서 당당히 활용하지 못하면 투자 압박과 관세 위협은 계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반도체의 대체 불가능성을 적극적 협상 카드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누적 대미 투자는 각각 370억 달러, 39억 달러로 TSMC의 2650억 달러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지만,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갖는 시장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미국이 자국 공급망 안정화를 추구하는 만큼 한국 반도체 없이는 그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관세 압박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게 아니라 한미 안보 협력, 방산 수출, 원자력·조선 등 전략 산업 협력과 연계한 패키지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향후 4년간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이 중 2000억 달러는 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 한미 관세 협상에서도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문제는 이런 양보가 구체적인 대가를 동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투자와 관세 감면을 연계하는 미국의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주어진 조건에 맞추려 하기보다 자국 산업의 전략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맞협상에 나서야 한다.

대외 협상만큼 중요한 것이 내부 투자 여건 개선이다. 전기료 인상 불확실성, 노란봉투법 등 규제 리스크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에게 미국 투자를 독려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내 반도체 생산 기반을 먼저 안정화하고 규제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기업들도 대미 협상에서 정부를 신뢰하고 따를 수 있다.

한국 반도체는 미국 공급망의 핵심 축이다. 이 사실을 협상 테이블에서 당당히 활용하지 못하면 투자 압박과 관세 위협은 계속될 것이다. 소극적 대응을 넘어 전략적 레버리지를 총동원하는 협상 자세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