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조작정보에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 허용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 과방위를 통과했다. 국민의힘 과방위 의원들은 “온라인 입틀막법”이라 규정하며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악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허위·조작정보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주도로 의결했다. 개정안은 정보통신망법에 ‘허위조작정보’ 개념을 새로 두고, 악의적 정보 유통이 피해를 초래하면 최대 5배 배상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의힘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상임위 표결에 반발해 회의장을 퇴장한 뒤, 국회 소통관에서 공동 언론브리핑을 열고 개정안을 “선진 민주국가 어디에도 없는 악법”, “온라인 입틀막법”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개정안이 허위조작정보 규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권력자와 재력가, 대기업 등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보도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특히 이번 개정안의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을 문제 삼았다. 개정안은 불법정보 또는 허위조작정보임을 알았거나 충분히 알 수 있었고,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의도나 부당한 이익을 얻을 목적이 있으며, 그 정보 유통으로 피해자에게 법익 침해가 발생한 경우 최대 5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야당은 이 같은 요건이 모두 모호한 불확정 개념으로 구성돼 있어 해석·적용 과정에서 자의적 판단과 남소(濫訴)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브리핑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문가들의 지적을 인용하며 이번 법을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위축효과)’와 ‘전략적 봉쇄소송(SLAPP)’을 촉발할 수 있는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 위험이 언론사와 기자, 유튜브 창작자 등의 자기검열을 심화시키고, 권력 비리 의혹 보도나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라는 주장이다. 당은 “권력자와 대기업이 언론사를 거덜 내고 비판 기사 쓴 기자의 가정까지 파탄 낼 수 있는 법”이라며 “언론과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겠다는 독재 입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2021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상기시켰다. 당시 여당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언론사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내용을 추진했지만, 국내 언론계와 시민사회뿐 아니라 국제언론인협회(IPI), 국제기자연맹(IFJ) 등 국제 언론단체, 그리고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아이린 칸(Irene Khan)까지 우려를 표명하면서 결국 법안을 철회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4년 전 세계가 우려해 막아냈던 ‘언론재갈법’의 망령이 이번 ‘온라인 입틀막법’으로 되살아났다”고 비판했다.
야당 의원들은 미국의 사례도 언급했다. 브리핑에서 이들은 미국 연방헌법 수정 1조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강력히 보호하고 있으며, 공직자나 공적 인물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때에는 원고가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해야 승소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일부 미국 주에서 표현행위를 위축시키는 입법을 제한하고, 정정보도나 반론보도가 신속히 이뤄질 경우 언론에 면책을 부여하는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고 소개하며, “허위 정보마저도 자유롭고 공개적인 사상의 경쟁시장 속에서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토론하고 검증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과거 ‘대장동 의혹’ 보도가 소규모 지역 언론사의 취재에서 시작됐던 사례를 언급하며, 권력 비리 감시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의 역할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존 밀턴(John Milton)의 ‘허가제 비판’ 문구를 인용해 “진리와 거짓이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국민의 입을 틀어막아도 자유와 진실마저 틀어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에서도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은 거세다. 언론단체와 인권·시민단체들은 이번 법이 허위조작정보 규제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모호한 개념과 과도한 징벌규정을 통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해 왔다. 일부 단체는 허위조작정보 개념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행정규제와 민사책임을 동시에 강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위축법’에 가깝다고 비판하고 있다.
개정안 심사 과정에서 과도한 입증책임 전환 조항은 삭제되고, 과도한 소송을 법원이 조기에 각하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 특칙’이 포함되는 등 일부 조정이 이뤄졌지만, 권력자의 소송 남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이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 과방위 의원들은 “더불어도, 민주도 내팽개친 166석 독재 여당에 맞서 자유 언론과 자유민주 시민사회를 지키겠다”며 향후 본회의 심사 과정에서 개정안 저지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예고했다. 여당은 허위·조작정보로 인한 피해 구제와 정보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 법안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정기국회 막판까지 정치권의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