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6월 5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중앙선관위는 배우자 동반 해외출장에 1억6247만원을 쓰고, 수의계약 비율이 87.7%에 달했으며, 2013년부터 실시한 291차례 경력 채용에서 1200여건의 규정 위반이 적발됐다. 문제는 이런 구조적 병폐가 중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남을 포함한 전국 255개 기초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방패 뒤에서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남의 투표용지 인쇄 예산 집행률은 75.2%로 제주(79.2%) 다음으로 전국 세 번째였다. 전국 평균 56.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높은 집행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앙선관위가 145억원을 편성해놓고 82억원만 집행하며 예산 관리 부실을 드러낸 상황에서, 경남 18개 시군 선관위의 예산 집행과 계약 내역은 제대로 공개되고 있는가.

중앙선관위의 수의계약 비율은 10건 중 9건 수준이다. 감사원조차 단기 감사만 할 수 있을 뿐 상시 감시는 불가능했다. 경남도 선관위와 18개 시군 선관위는 어떤가. 위원장과 사무처장의 해외출장 내역, 수의계약 비율, 채용 과정의 투명성은 외부에 공개된 적이 있는가. 헌법기관 독립성이라는 명분이 지역 단위에서는 감시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경찰은 6월 11일 일부 지역선관위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피의자로 지목한 압수영장을 집행했다. 중앙의 비리가 지역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을 수사 당국도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남 지역에서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 공개나 자체 점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도의회도, 시민사회도 선관위라는 이름 앞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독립기관이라는 위상이 도리어 특권 의식과 폐쇄성을 키운 중앙의 전철을 경남이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경남도의회는 경남도 선관위에 최근 3년간 수의계약 내역, 해외출장 예산 집행 세부 내역, 채용 과정 투명성 자료를 즉시 제출받아 공개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각 시군 선관위의 예산 집행과 인사 운영에 대한 감시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중앙의 비리가 지역의 거울이 되지 않으려면, 헌법기관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불투명한 운영 구조를 지금 당장 걷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