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도지사 박완수)가 6월 30일 경남 출신 미서훈(未敍勳) 독립운동가 26명의 서훈 신청서를 국가보훈부에 제출했다. 도가 지난해부터 자체 꾸린 발굴‧심사 태스크포스(TF)가 올해 처음 올린 신청서다.
대상자는 모두 1919년 3‧1운동 당시 경남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거나 적극 가담해 체포·투옥·고문을 겪은 인물들이다. 그동안 행형 기록이나 재판 자료가 남지 않아 서훈 대상에서 빠져 있었지만, 도와 시·군, 지역 연구자, 유족이 수집한 범죄인명부·신문 보도·면사무소 결재 문서 등 1차 사료가 새로 발굴되면서 이번 신청이 가능해졌다.

이들 가운데 김선림·김상문 등 4명은 독립운동사 총서에 이름이 있지만 행형 기록이 없어 포상이 번번이 보류됐다. 그러나 지난 2월 산청군 신등면사무소 문서고에서 1918~1920년 ‘범죄인명부’가 발견되면서 형 집행 사실이 최초 확인돼 서훈 신청 길이 열렸다.
범죄인명부에서는 그동안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권태석·신치장 두 사람도 확인돼 이번 명단에 포함됐다.
창원 진동 고현장터 만세운동 주역인 심상원·권영한 선생은 3월 28일 군중과 함께 고현장터를 돌며 독립을 외치다 대정 8년(1919) 제령 7호(보안법)·출판법 위반으로 각각 징역 1년과 6개월을 선고받았다. 김해 진영읍 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한 김성도·김우현 선생은 3월 31일 20대 청년 동지들과 결의해 항일 만세를 주도했고 징역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고성 구만‧회화 만세시위에 참가한 구영서 선생은 태형 60도를, 의령·합천·사천 등 각지 만세시위 참가자도 징역·태형형을 선고받았던 사실이 면사무소 문서, 일제 사법 기록으로 확인됐다.
경남도는 2023년 6월 TF를 꾸린 뒤 1년 남짓한 기간에 100여 건의 현장조사와 문서고·교회·사찰·학교 등 민간 소장 자료 조사를 병행했다. 지난해까지 총 76명의 서훈 신청서를 올렸고, 두 차례 정부포상에서 전국 최다 인원(연인원 28명)이 선정되는 성과를 얻었다.
다만 후손 확인·훈장 전수율은 아직 70%대에 머물러 “반쪽짜리 보훈 행정”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도는 올해부터는 서훈 신청과 함께 ‘후손 찾기 TF’를 별도로 가동해 지자체·학교·향우회·해외 교포사회까지 연계망을 넓히고 있다.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 사업은 지역사가 곧 민족사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김맹숙 경남도 복지정책과장은 “3‧1운동은 서울·평양 못지않게 경남 각 읍‧면 장터에서 들불처럼 번졌다”며 “경남 전역에서 봉기했던 민초들의 만세 함성을 근거자료 부족으로 묻힐 수 없다는 절박함이 사업의 동력”이라고 말했다.

도는 올 하반기에도 산청·창원·진주를 중심으로 미서훈 독립운동가 추가 조사를 진행해 연말까지 1~2차례 추가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서훈 절차는 △도 TF 1차 심사 △보훈부 공적심사위원회 예비심사 △국가보훈심의회 최종 심의 △대통령 재가 순으로 진행된다. 최소 9개월이 소요돼, 이번 26인은 빠르면 내년 8·15 광복절 정부포상 발표에서 결과를 기다리게 된다.
보훈부는 사실 입증이 어려운 지방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해서도 면사무소 범죄인명부·교회 장부·불교 승적대장·일제 판결문 등 ‘현장 1차 사료’를 인정하는 추세다. 도는 이 같은 기준 변화에 발맞춰 군·구 문서고 전수조사, 민간 소장 사료 매입·복원 예산을 2억 원에서 5억 원으로 증액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신청이 “도 단위 지자체가 독립운동가 발굴·서훈 신청을 상시화한 전국 첫 사례”라며 행정 광역화 모델로 주목한다. 창원대 사학과 송모 교수는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발굴·서훈·교육·관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는 내년 경남독립운동기념관(가칭) 기본 설계를 마치고, 2027년 개관을 목표로 독립유적 가상현실(VR) 체험존, 만세길 트레킹 코스와 연계한 관광 콘텐츠를 구상 중이다.
경남도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도청 로비에 26인 사진과 활동상을 담은 특별 전시관을 열고, 각 시·군청과 학교·도서관·박물관에 순회 전시 패널을 보낼 예정이다.
박완수 지사는 “독립운동 유산을 발굴하는 일은 과거를 넘어 미래세대 교육 자산을 쌓는 일”이라며 “26분 모두 정부포상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그 정신이 청소년에게 살아 있는 역사 수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