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과 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전 세계 교원노조 지도자와 교육전문가들이 모여 ‘사람 중심의 인공지능(AI)’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교육국제(Education International)가 주관하는 이번 회의의 이름은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다: 사람 중심 AI를 선도하는 교육노조(Shaping Our Future: Education Unions Leading for a Human-Centred AI)”입니다. 슬로건은 분명합니다. “어떤 알고리즘도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 기술기업이 교육 시장을 선점하려는 속도에 비해, 교사와 학생의 목소리를 중심에 세우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AI는 이미 교실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미국의 한 특수학급에서는 시선 추적 장치와 AI 기반 보완·대체 의사소통 도구가 아이들의 ‘눈빛’을 문장으로 바꾸어 줍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학생이 눈동자만으로 토론에 참여하고 농담까지 건넬 수 있게 된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봇과 AI 도구를 활용해 개별 학생에게 맞춘 어휘 목록과 대화 연습 자료를 만들어 언어치료를 돕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장애학생을 담당하는 교사의 약 10명 중 6명 가까이가 2024~2025학년도에 개별화 교육계획을 세우는 과정에 AI를 활용했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학생의 64%는 “AI가 글쓰기·읽기 이해·탐구능력 같은 핵심 역량을 약화시킨다”고 걱정했고, 개별화 계획을 가진 학생의 57%는 “AI를 쓰면 교사와 덜 연결된 느낌이 든다”고 답했습니다. 가능성과 위험이 동시에 커지는 전형적인 ‘양날의 칼’입니다.
이런 가운데 세계는 심각한 교사 부족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교육국제와 국제기구는 2030년까지 유아·초·중등 단계에서만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의 교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경고합니다.
인건비를 줄이고, 교사 부족을 메우기 위한 값싼 대체재로 AI를 도입하자는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브뤼셀 회의가 굳이 “인권 기반(human rights-based)·사람 중심(human-centred)”이라는 표현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회의는 AI가 교육현장에 들어올 때 △교육의 공공성 △교사의 노동권과 자율성 △학생의 프라이버시와 데이터권 △기회·접근성의 형평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노조와 교사가 주도적으로 원칙을 세우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한국 교육도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학교에서 AI 튜터, 자동 채점, 학습분석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교육청과 교육부는 ‘에듀테크’와 ‘디지털 전환’을 미래 교육의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어떤 철학과 원칙 위에서 AI를 쓸 것인가”를 충분히 논의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AI를 도입하는 이유가 수업 혁신과 학생 지원 확대가 아니라, 행정 효율과 인력 감축, 시험 대비 편의에만 맞춰진다면, 브뤼셀에서 교사들이 우려하는 “교육의 상업화와 교직의 탈전문화(deprofessionalisation)”가 우리 학교에서도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한국 교육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사람 중심 AI 교육”의 원칙을 분명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교육국제와 미국교원단체(NEA)는 이미 AI 교육 활용을 점검하는 기준으로 △당사자인 학생·장애학생·교사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지, △교사와 학생 간 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인지, △데이터 보호와 편향 완화 장치가 충분한지, △모든 학생에게 접근 가능한 도구인지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중심이 되어, 교사·학생·학부모·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국가·지역 수준의 ‘AI 교육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안에는 “AI는 교사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전문성을 확장하는 조력자”라는 대전제가 명시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AI 관련 정책과 예산 결정 과정에 교사와 교원단체, 학부모의 참여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브뤼셀 회의가 ‘교육노조가 AI 논의를 이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기술 도입의 기준과 한계를 교사가 함께 정하지 않으면 결국 상업적 이해관계가 교육의 방향을 좌우하게 된다는 자각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 현장에서도 교사들은 이미 “AI 도입은 위에서 결정하고, 현장은 따라가라는 식”이라고 토로합니다. AI 플랫폼 선정, 데이터 수집 범위, 학생 활용 지침 등을 논의하는 교육청·학교 위원회에 교사와 학부모가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AI를 들여오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위한 투자’를 병행해야 합니다. 세계가 5,000만 명의 교사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똑똑한 AI도 교사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역설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육도 AI 사업비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돌봄과 상담 인력 확충, 교사의 행정업무 경감, 디지털·AI 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연수에 재정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사가 “AI에게 일을 넘기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도구로 삼아 학생 한 명 한 명을 더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로 설 수 있습니다.
AI 시대의 교육은 단순히 새로운 기계를 들여오는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의 중심에 누구를 세울 것인가”를 다시 묻는 일입니다. 브뤼셀에서 모인 교사들은 “우리는 기술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아이들의 눈빛과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교실, 교사가 학생 곁에서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는 교실을 지키기 위해, 한국 교육 역시 사람 중심의 AI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지금부터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입니다. AI가 아니라 아이들을 기준으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할 것인지 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