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2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제2기를 출범시키며 노동계 위원을 2명으로 늘렸다. 농민 등 다양한 계층 대표도 신규 위촉했다. 2022년 10월 제1기 출범 당시 민간위원 77명 중 노동계 인사가 한국노총 위원장 1명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개선 의지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58명의 제2기 위원 구성에서 산업계와 학계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기후위기 최전선에 선 노동자·농민·청년·시민사회 당사자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위원 수가 아니라 거버넌스 설계 철학에 있다. 2021년 9월 시민사회·환경·노동·여성·청소년 단체 46곳이 공동대책위를 꾸려 탄소중립위를 '산업과 기업이 주도한 비민주적 기구'라고 비판한 이유가 여기 있다. 당시 발전노조는 보령화력 1·2호기 폐쇄 후 노동자 280명이 전환배치되고 협력업체 직원 16명이 실직한 사례를 들며 고용불안을 호소했다. 정작 정책 테이블엔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전할 창구가 사실상 없었다. 민주노총은 아예 '정부와 기업 주도 위원회로는 문제 해결 불가능'하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처럼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고, 이해관계자 참여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산업계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반영된 정책은 실효성마저 의심받는다. 2021년 10월 기후위기비상행동은 '2030년까지 석탄과 LNG 발전을 40%나 남겨두고, 철강분야는 2.3% 감축에 그친다'며 탄소중립위 의결안을 비판했다. 2023년 3월 정부가 공개한 국가 기본계획 역시 '국제사회 약속도 못 지키고 산업계 이해만 반영하며 재생에너지는 줄이고 핵발전만 외친다'는 혹평을 받았다. 위원회 연구기획위원조차 '재계·산업계 입장을 그대로 받아 시나리오를 짜니 비현실적'이라고 토로했다. 이 말이 현실을 방증한다.

해외 사례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법정 독립 기후자문기구인 기후변화위원회를 설치해 탄소예산 제도를 운영하며 정부 이행을 점검한다. EU 기후변화과학자문위원회 역시 독립성과 과학 기반 의사결정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위원회가 특정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워야 정책 신뢰도와 실행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경남에선 이 문제가 더욱 절박하다. 조선·기계 등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이 집적된 이 지역은 올해 본격화된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수출 경쟁력 위기에 직면했다. 공정 전환 비용이 급증하는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은 탄소 데이터 관리 역량 부족으로 허덕인다. 지역 차원의 CCUS 클러스터나 RE100 산단 조성 같은 기술 혁신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와 생계 기반이 흔들릴 농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어떻게 담을지가 선결 과제다.

탄소중립은 산업 구조조정이 아니라 사회 전환이다. 위원 몇 명 늘리는 수준을 넘어 거버넌스를 재설계해야 한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처럼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고, 이해관계자 참여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정책 결정 단계마다 노동·농민·청년·지역사회가 실질적 발언권을 가질 때 비로소 2050 탄소중립은 공염불이 아닌 현실이 된다. 탄소중립위는 지금이라도 위원 구성과 의사결정 구조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