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준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교육연구소장

격랑의 바다는 언제나 인간의 의지를 시험한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단순한 해상 분쟁을 넘어선다. 그것은 생존과 전략, 세계 질서가 교차하는 거대한 흐름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압박과 이란 혁명수비대의 대응은 ‘봉쇄와 역봉쇄’라는 오래된 전략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여기에 '해협 통과세' 라는 변수까지 얹히며, 바다는 다시 보이지 않는 전쟁터로 되돌아간다. 이 장면 앞에서 자연스레 한 인물이 떠오른다. 

이순신. 그는 단순히 무력을 행사한 장수가 아니었다. 바다의 흐름을 읽고, 좁은 물목의 힘을 활용하며, 적의 심리를 꿰뚫은 전략가였다. 더 나아가 해로 통행 질서를 정비하고, 이를 통해 군량을 확보하는 제도까지 설계한, 전쟁의 보이지 않는 기반을 구축한 사유의 주체였다.


임진왜란 당시 견내량과 울돌목의 승리는 단순한 전투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전쟁을 지배한다”는 명제를 실증한 사건이었다. “일부당경 족구천부”라는 결기는 병력의 열세를 넘어, 물목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전략적 선언이었다.
그의 물목 전략은 결코 즉흥이 아니었다. 명량해전을 앞둔 어느 날, 백의종군 길에 오른 그는 합천의 개벼리를 지나며 “이런 곳이라면 한 사람이 만 명을 상대할 수 있겠다”고 했다. 이는 감상이 아니라 통찰이었다. ‘압축된 공간’에서 힘의 비대칭을 전복시키는 원리를 꿰뚫은 사유였다.


호르무즈 해협 역시 그러한 물목이다. 세계 원유의 상당량이 이 좁은 길을 통과한다. 이곳을 통제하는 자는 군사적 우위를 넘어 경제적 생명선을 쥔다. 이란이 봉쇄를 언급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이 물길은 내가 쥐고 있다”는 선언이 된다. 반대로 미국의 역봉쇄 전략은 이 물길의 의미를 분산시키고, 더 넓은 해상 질서 속에서 상대를 고립시키려는 시도다. 두 전략은 창과 방패처럼 맞물리며, 결국 누가 더 오래 버티고 더 넓은 판을 읽느냐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순신의 물목 전략이 오늘날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좁은 길목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다. 힘이 압축되는 지점이다. 약자는 그 압축으로 강자를 견제하고, 강자는 이를 우회하거나 무력화함으로써 우위를 유지한다. 승패는 힘의 총량이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집중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물목을 ‘막는 데’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물목을 통해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동시에, 자신의 기동을 극대화했다. 방어와 공격을 하나의 구조로 통합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 통찰은 유효하다. 이란의 봉쇄 카드는 단기적 압박에는 유효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고립이라는 역풍을 부를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역봉쇄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활용하지만, 그 자체로 긴장을 극대화하는 위험을 내포한다. 결국 바다의 승부는 ‘누가 더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 ‘누가 더 넓게 읽는가’의 문제다. 이순신이 보여준 것은 힘이 아니라 흐름이었다. 그는 바다를 제압하지 않았다. 바다를 이해했고, 그 힘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좁은 물길 하나가 세계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이 시대의 물목을 읽고 있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