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정부 첫 ‘중소기업 인공지능 전환’ 선포식이 열렸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지역 주도형 AI 대전환’ 사업의 비전을, 다섯 개 거점 시·도 가운데 경남에서 발표했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이 사업은 국비 234억 원을 들여 경남·대구·울산·전남·제주에 GPU와 테스트베드 장비를 갖춘 거점 인프라를 깔고, 지자체 주도로 중소기업의 AI 전환과 인재 양성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경남도는 특히 경남창원산학융합원에 엔비디아 GPU 기반 제조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24시간 개방형으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염려되는 점은 “경남을 제조 AI 메카로 만들겠다”는 선언이 나왔으나, 문제는 이 선언이 또 하나의 ‘센터 개관식’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지역 제조업의 체질을 바꾸는 변곡점이 되느냐다.

경남은 출발선이 나쁘지 않다. 이미 도내에 스마트공장이 4,200여 개나 깔려 있고, 이를 활용한 ‘제조 AI 집적화’ 구상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경남창원산학융합원 제조 AI 데이터센터를 축으로 AX(제조 AI 전환) 실증산단, AI 팩토리 사업, 제조업 AI 융합 기반 조성사업 등 수천억 원 규모의 국비 사업이 연계된다. 

경남도는 우선 중소기업 30곳을 선정해 맞춤형 AI 솔루션 개발과 실증을 지원하고, 매출 12% 증가, 제조원가 5% 절감, 납기 준수율 95% 이상이라는 구체적인 성과 지표까지 내놓았다. 도내 대학 네 곳과 협력해 현장 맞춤형 AI 인재 300명 이상을 키우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글로벌 제조융합 SW 개발 및 실증’ 사업, ‘제조특화 초거대 AI 서비스 개발’ 사업이 상품화 단계에 들어가며, 경남테크노파크는 R&BD 프로그램을 통해 37개 기업 중 20개사의 추가 매출 40억 원 이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와 GPU는 ‘조건’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공공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전형적인 패턴은 항상 같다. 건물과 장비는 화려한데, 정작 그 안에서 돌아가는 데이터와 사람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경남이 제조 AI 메카가 되려면 최소한 세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는 데이터 거버넌스, 둘째는 현장형 인재, 셋째는 민간 주도 생태계다. 이 셋이 맞물리지 않으면, 수천억 원짜리 GPU 클러스터도 고가의 전시품이 되기 쉽다.

먼저 데이터 거버넌스다. 경남에는 이미 수천 개의 스마트공장이 존재하고, 이 공장들이 쌓아온 공정 데이터와 설비 데이터는 그 자체로 ‘금광’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레시피나 불량 데이터가 곧 경쟁력이라, 이를 외부에 내놓는 순간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데이터센터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GPU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 데이터 불신을 푸는 것이다. 기업 간 데이터 공유 규칙과 표준을 만들고, 제3의 공공·중립 기관이 데이터를 신탁받아 익명화·비식별화해 쓰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특정 기업의 노하우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다수 기업의 데이터를 묶어 학습할 수 있는 ‘제조 데이터 스페이스’가 만들어져야 진짜 초거대 제조 AI가 나온다.

둘째는 인재다. 경남도와 대학들은 지역 기업 맞춤형 AI 인재 300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몇 명’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이다. 제조 AI는 일반적인 코딩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정을 알고, 설비를 이해하고, 불량 원인을 몸으로 겪어본 사람들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함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장 엔지니어에게 AI를 입히는 ‘T자형 인재’ 전략이 필요하다. 

대학 강의실에서 파이썬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실제 공장 데이터를 들고 오는 산학 프로젝트, 도내 기업과 함께하는 인턴십, 생산기술·품질관리 출신 인력을 대상으로 한 리스킬링 프로그램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 각종 연구와 경남도의 자료는 AI 기반 스마트 제조 전환이 생산성을 최대 25%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의 설계부터 바꿔야 한다.

셋째는 민간 주도 생태계다. 경남도가 인공지능산업과장에 현대위아 정보보호실장 출신 박환 씨를 개방형 직위로 영입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그널이다. 28년 동안 제조 현장에서 AI와 데이터 기반 고도화를 추진해 온 사람이 도청 안에서 AI 산업 정책을 총괄하게 됐다는 것은, 적어도 “정책을 짜는 사람이 공장을 모르는” 상황은 벗어났다는 뜻이다. 여기에 경남테크노파크가 수행 중인 제조 AI 전환 사업, 도내 스타트업과 솔루션 기업들이 참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묶어 ‘민관 합동 AX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 SI 몇 곳이 턴키로 사업을 가져가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중소·중견기업과 지역 스타트업이 함께 솔루션을 만들고, 데이터센터는 그 플랫폼이 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정책 설계에서 빠지기 쉬운 현실도 짚어야 한다. GPU와 데이터를 쓴다고 해서 자동으로 AI가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그래, 좋은데 이걸 쓸 돈은 누가 내나”이다. 따라서 데이터센터에는 단순 장비만이 아니라 ‘AI 바우처+컨설팅 패키지’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공정 개선 과제 하나당 도가 일정 부분 비용을 매칭해주고, 나머지는 기업이 부담하도록 해 ‘공짜’가 아닌 ‘투자’로 인식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 동시에 ‘제조 챗GPT’와 같은 범용 제조 AI 서비스는 강력한 보안 체계와 단계적 개방 원칙 아래 도입해야 한다.

경남도가 스스로 밝혔듯 제조업 전반의 범용 AI는 보안이 최대 숙제다. 핵심 공정 데이터와 국가핵심기술이 섞여 있는 만큼, 제로트러스트 보안과 물리적·논리적 망 분리, 데이터 사용 이력 관리가 전제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끝내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솔직한 대화도 필요하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AI가 도입되면 내 일자리는 어떻게 되나”를 걱정한다. 제조 AI는 단순 반복 작업을 줄이고, 사람을 더 고부가가치 업무로 이동시키는 기술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장 안 조직과 교육 체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생산직·기능직 인력이 데이터 기반 공정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고, 이를 인사·보상 시스템과 연결해야 한다.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구조로 설계해야 경남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이 올라간다. 장기적으로 보면, 고품질·고생산성 공장은 더 많은 수주와 투자를 끌어들이고, 이는 오히려 지역의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경남은 이미 제조 AI 전환의 무대를 갖췄다. 스마트공장 4,200개, 수천억 원의 AX 관련 국비 사업, 엔비디아 GPU를 탑재한 제조 AI 데이터센터, 그리고 제조 현장을 잘 아는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예산’이 아니라, 데이터–인재–민간 리더십을 묶는 실행력이다. 앞으로 3년이 경남이 진짜 제조 AI 메카로 도약할지, 아니면 또 하나의 공모사업 사례로 남을지를 가를 것이다. 경남도와 도내 기업, 대학, 스타트업이 함께 “센터 중심”이 아닌 “현장 중심”의 제조 AI 전략을 과감하게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데이터센터가 지역 제조업의 마지막 골든타임을 살려낼 진짜 ‘심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