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 편성한 2차 추경의 핵심은 ‘민생회복 소비쿠폰(민생지원금)’이다. 총 30조 원대 추경 가운데 13조 2천억 원가량을 투입해 전 국민 5,117만 명에게 1인당 15만~50만 원을 쿠폰으로 지급하고, 2차로 90% 국민에게 10만 원을 추가 지급하는 구조다. 4인 가구 기준 농어촌 기초생활수급 가구는 최대 208만 원까지 받을 수 있고, 동시에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29조 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른다. 

표면적으로는 “골목상권을 살리는 통 큰 민생”,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지만, 이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에 대한 냉정한 논의는 뒤로 밀려 있다. 이른바 ‘현금 복지 포퓰리즘’의 전형적 구조다.

더구나 이 민생지원금은 이재명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 온 ‘기본사회·기본소득’ 구상을 현실 정책으로 확장하는 계기로 해석되고 있다. 단발성 위기 대응인지, 상시적 현금 이전의 전 단계인지조차 불분명한 상태에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중한 검토는 실종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앙정부의 보편 지원을 본뜬 지자체 ‘민생지원금’이 전국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전북·충북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의 기초자치단체 상당수는 자체 예산으로 주민 1인당 10만~100만 원까지 추가 지원에 나섰다. 충북 제천·음성·증평, 전북 고창·김제·남원·완주·진안, 강원 정선, 경기 파주·광명 등에서 이미 현금성 지원이 집행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표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시민단체와 지역 언론에서 제기된다. 

순천시는 한술 더 떠 순수 시비 580억 원을 들여 전 시민에게 1인당 20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했다. 어느 지자체장도 “우리만 안 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구조, ‘현금 살포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의 곳간 사정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정부 민생쿠폰 예산 중 10% 안팎을 지자체가 분담하는 구조 때문에, 지방비 수백억 원을 마련하느라 기존 사업을 줄이거나 지방채 발행을 검토하는 지자체가 적지 않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와 집권 여당, 그리고 여권에 우호적인 단체장들은 “단기 소비 진작”, “지역 상권 매출 증가”라는 명분만 앞세운다. 실제로 충북 음성군과 강원 정선군의 사례에서 지원금 지급 이후 지역화폐 사용액 및 소상공인 매출이 일시적으로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재정이 투입된 만큼의 ‘반짝 효과’에 불과하다. 코로나 시기 중앙·지방이 총 14조 원 규모 재난지원금을 풀었을 때도 실제 순수 추가 소비는 3조 6천억~5조 원 수준에 그쳤다는 분석이 이미 나온 바 있다. 반면 국가채무와 지방채는 고스란히 남아 이후 세대의 짐이 되었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책 철학 자체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일각은 민생지원금을 ‘기본소득 사회로 가는 전 단계’, ‘정부가 국민을 조건 없이 신뢰한다는 선언’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신뢰는 공짜 돈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규칙과 공정한 기회에서 나온다. 재정 여력이 넉넉지 않은 나라에서 보편 현금지급을 반복하는 것은, 사실상 미래세대의 지갑을 담보로 오늘의 표정 관리에 나서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물가·고금리·저성장 국면에서 당장 생계가 어려운 취약계층을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누구에게, 어떻게’다. 한정된 재원을 가장 어려운 계층과 생산성 제고에 집중하기보다, 소득 상위 10%와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중산층까지 일괄 지원하는 방식은 재정의 기본 원칙과 거리가 멀다.

현금은 한 번 맛을 보면 끊기 어렵다. 중앙정부가 “이번 한 번”이라 해도, 국민과 정치권은 곧 “지난번에도 줬는데 왜 이번엔 안 주느냐”고 묻게 된다.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순천처럼 “빚을 내지 않았으니 건전 재정”이라고 주장하지만, 580억 원이 한 도시의 중장기 투자와 사회간접자본, 인구·교육 대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결코 가벼운 돈이 아니다. 재정은 한 번 쓰면 되돌릴 수 없다.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세금 인상과 긴축 재정, 그리고 줄어든 미래 선택지뿐이다.

집권 세력과 지방단체장들이 진정으로 민생을 생각한다면, 보편 현금 살포 경쟁부터 중단해야 한다. 대신 취약계층 선별 지원을 정교화하고, 규제 개혁과 노동·교육·연금 개혁, 지방 산업 구조 전환 등 성장 기반을 다지는 데 재정을 배분하는 것이 순서다. ‘공짜 점심’의 달콤함보다, 재정 원칙과 책임의 냉정함을 택할 때 비로소 진짜 민생정치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