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가 혁신기업 35곳에 32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첨단산업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다. 특히 항공우주산업은 경남의 대표 전략산업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비롯한 세계적 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앵커기업 뒤에 가려진 중소기업들의 현실은 여전히 '하청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지금, 이 돈이 진짜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경남은 전국 항공우주산업 생산액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중심지다. KAI를 중심으로 300여 개 협력업체가 밀집해 있고, FA-50 수출과 KF-21 개발로 산업 전망도 밝다. 일부는 이를 두고 '항공우주 산업 클러스터'라 부른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부품 가공과 조립 공정에 머물러 있다. 설계나 핵심 기술 개발은 대기업이나 해외 협력사 몫이고, 중소기업은 도면대로 깎고 조립하는 역할만 반복한다. 이는 단순히 수익성 문제가 아니라, 기술 축적과 자생력 확보가 불가능한 구조적 한계다.

문제는 이번 320억 원 혁신투자가 이런 구조를 바꿀 수 있느냐는 점이다. 도가 밝힌 혁신기업 35곳의 업종별 구성을 보면, 항공우주 분야가 몇 곳이나 포함됐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설령 포함됐다 해도, 투자 내용이 시설 확충이나 생산 능력 증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는 '양적 성장'일 뿐 '질적 전환'은 아니다. 단순 가공 능력을 두 배로 키운다고 해서 설계 역량이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부가가치 구조를 고착화하고, 대기업 의존도만 높일 위험이 크다. 혁신이란 이름이 무색한 '기존 방식의 확대 재생산'에 그치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앵커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이전과 협력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KAI 같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핵심 기술을 이전하거나 공동 연구개발(R&D)을 진행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단가 협상과 납기 관리로 끝나는 수직적 거래 관계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의욕이 있어도, 설계 도면조차 공유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술 고도화는 불가능하다. 이는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병폐다. 경남도가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이런 생태계 전환에는 무관심하다면, 투자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진짜 혁신을 위해서는 정책의 방향 전환이 절실하다. 첫째, 혁신투자의 상당 부분을 항공우주 중소기업의 '설계·개발 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 가공 설비 지원이 아니라, 엔지니어 양성과 R&D 인프라 구축, 시제품 개발 지원으로 투자 방향을 바꿔야 한다. 둘째, 앵커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협력 의무화와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대기업이 공공 발주나 세제 혜택을 받을 때, 중소기업과의 기술 공유 실적을 평가 기준에 넣는 것이다. 셋째, 항공우주 특화 기술지원센터를 설립해 중소기업들이 설계 소프트웨어와 시험 장비를 공동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남은 이미 항공우주산업의 든든한 기반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 기반이 소수 대기업에만 집중돼 있고,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하청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320억 원이라는 큰돈이 또다시 '보여주기식 지원'으로 흩어진다면, 몇 년 뒤에도 똑같은 하소연을 듣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양적 확대가 아니라 질적 전환에, 개별 기업 지원이 아니라 생태계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 진짜 혁신은 예산 규모가 아니라 구조를 바꿀 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