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2월 28일 보수 진영 3선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을 새 예산 기능을 맡을 ‘기획·예산(Planning & Budget)’ 수장으로 지명했고, 이 전 의원은 “정파를 넘어 민생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수락 의사를 밝혔다. 예산 편성 권한을 둘러싼 정부조직 개편까지 함께 추진되는 상황에서, 이 인사는 “파격”이라는 말로 포장되기 쉬우나 그만큼 더 엄격한 검증과 설명 책임이 따라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보수 출신을 기용했다’가 아니다. 예산은 숫자가 아니라 권력이고, 정부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는지 보여주는 정치의 언어다. 대통령실은 재정 운용 체계를 바꾸고, 기재부가 쥐고 있던 예산 기능을 떼어내는 방식의 개편을 추진해왔다. 이런 판을 흔드는 개편 국면에서 새 장관은 단순한 관리자라기보다 “누가, 어떤 철학으로, 어디에 돈을 배분할 것인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된다. 이 전 의원이 말하는 ‘초당적 협력’이 실제로는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대한 방패막이인지, 아니면 재정 원칙을 세우는 견제 장치인지가 분명해져야 한다.
또 하나, 수락의 절차와 타이밍이 남긴 불신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국민의힘은 이 전 의원이 국무위원 내정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당무를 수행했다며 제명 조치까지 의결했고, 당내 선출직 평가 등 ‘선거 관련 당무’에 관여했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사실관계는 청문회 과정에서 더 명확히 가려지겠지만, 공직 수락이 “개인의 결단”에만 머물면 곧바로 공적 신뢰의 파손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최소한 ‘언제 제안을 받았고, 언제 수락했고, 그 사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본인이 먼저 정리해 공개하는 것이 책임의 출발점이다.
더 본질적인 질문도 있다. 이 전 의원을 둘러싼 논란은 여야를 넘어 번졌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여권 내부에서도 과거 발언과 행적을 이유로 우려가 제기됐고, 이 전 의원은 과거 계엄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고 전해진다. 한국 정치가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의 상처를 겪은 직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새 예산 부처의 첫 수장에게 요구되는 기준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민생”을 말하기 전에, 그 민생을 지탱하는 헌정의 바닥을 어떤 태도로 지켜왔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결국 이 사안은 이혜훈 개인의 진로 문제가 아니라,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통합’이 무엇인지 시험하는 리트머스다. 통합은 ‘상징 인사’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사의 명분이 정책의 무게를 이길 수 없고, “파격”이 책임을 대체할 수도 없다. 청문회는 ‘능력’만이 아니라 ‘원칙’과 ‘투명성’을 묻는 자리여야 한다. 이 전 의원은 수락의 이유와 가치의 변화, 이해충돌 가능성, 재정 운영의 원칙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대통령실 역시 “초당적”이라는 말로 모든 의문을 덮기보다, 왜 하필 이 자리인지, 어떤 역할과 권한을 부여하는지, 실패의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까지 정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