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경남 각 지자체에서 읍면 복지협의체가 잇따라 출범하고 있다. 고성읍협의체는 취약계층을 위한 4개 복지사업을 의결했고, 남해군은 읍면협의체와 함께 복지현안을 논의했다. 밀양 상동면에서는 주민주도 복지동아리가 출범해 지역 복지망을 촘촘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주민 참여형 복지 거버넌스가 확대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의결하고 논의하는 '취약계층'은 과연 누구인가.
이번에 출범한 협의체들이 집중하는 대상은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장애인 등 전통적 복지 수혜층이다. 수십 년간 복지 정책의 중심에 있던 이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지역 밀착형 협의체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맞춤형 지원을 설계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진전이다. 실제로 이번 고성읍협의체가 의결한 사업들도 즉각적인 생활 지원이 필요한 계층을 겨냥하고 있다.
문제는 복지의 사각지대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가족을 돌보느라 학업과 경력을 포기하는 청년돌봄자, 사회적 관계망이 끊긴 채 고립되는 중장년 1인가구,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플랫폼 노동자. 이들은 기존 복지 체계에서 포착되지 않는다. 소득 기준으로는 수급 대상이 아니지만, 돌봄 부담이나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삶의 질이 극도로 낮다. 그런데 이번 복지협의체 출범 소식 어디에서도 이들을 위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경남도가 추진 중인 '가족돌봄 청년 실태조사'는 2026년까지 진행된다. 조사가 끝나야 정책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사이 20대 청년은 부모나 조부모를 돌보느라 대학을 중퇴하고, 취업 기회를 놓치고, 심리적 소진에 시달린다. 실태조사는 필요하다. 하지만 조사로만 2년을 보내는 동안 이들의 삶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복지 행정이 '조사 중독'에 빠진 사이, 실제 고통은 방치되고 있다. 이것이 주민을 위한 복지인가, 행정 편의를 위한 요식행위인가.
신종 취약계층 발굴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읍면협의체는 기존 복지 대상자 명부를 토대로 사업을 설계한다. 명부에 없는 이들은 애초에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다. 청년돌봄자나 고립 1인가구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투명인간'이다. 지자체는 이들을 발굴할 의지도, 시스템도 갖추지 못한 채 매년 비슷한 사업만 반복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다양화·은폐화되고 있다.
복지협의체가 진정으로 지역 주민을 위한 조직이라면, 명부에 없는 이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청년돌봄자 간담회를 열고, 1인가구 고립도를 점검하고, 플랫폼 노동자의 산재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 실태조사를 2년씩 끌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긴급 지원과 병행해야 한다. '전통적 복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협의체 출범이 아무리 늘어도 새로운 사각지대는 계속 방치될 것이다. 복지의 외연을 확장하지 않는 한, 주민 참여형 거버넌스는 기존 시스템을 재생산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