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또다시 선거 관리 부실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6·3 지방선거 본투표일, 서울 송파구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수십 분간 대기하거나 투표를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선관위는 "비용 절감을 위해 전체 유권자의 50%만큼만 용지를 인쇄했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변명일 뿐이다.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무능과 안일함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투표용지를 소쿠리와 쇼핑백에 담아 옮기는 '소쿠리 투표' 논란이 일었다. 당시 노정희 선관위원장은 선거 당일 출근도 하지 않아 비난을 받았다. 2023년에는 선관위 직원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터졌고, 선거 때마다 직원들이 대거 휴직하는 관행도 보도됐다. 잘못이 반복되는 동안 선관위는 무엇을 했는가.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고,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며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선관위는 '소쿠리 투표' 자체 쇄신안을 마련하며 "예측, 준비, 대처 등 총체적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쇄신안이 나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또다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위원장 상근화, 위원 전원 상임화 등 제도 개선 과제는 '장기 검토'로 미뤄졌고, 정작 선거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체 반성문은 그저 면피용 문서였을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선관위의 반복된 부실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점이다.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고, 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고, 추가 용지를 지퍼백에 담아 나르는 모습은 선거 관리의 신뢰를 근본부터 흔든다. 선관위가 스스로 음모론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 관리 기관이 선거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선관위는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그 기관이 기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스스로의 존재를 정당화하려 하는가. 투표용지 인쇄도, 투표함 관리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선관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비상임 겸임 체제로는 책임 있는 선거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수년간 이어졌지만, 선관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며 독립성을 내세웠지만, 그 독립성은 무책임의 방패막이로 전락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기관에 독립성을 보장할 이유가 있는가.

선관위는 즉각 위원장 상근화를 포함한 전면적인 조직 개편에 나서야 한다. '장기 검토'가 아니라 '즉시 시행'이 답이다. 선거 관리 실패에 대한 명확한 책임 소재를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더 이상 자체 쇄신안이라는 이름의 면피용 문서로 국민을 속여선 안 된다. 기본조차 못하는 기관은 존재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