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동해시 동호동의 옛 기억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과거 묵호역에서 새마을호 등 열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만화책을 빌려 읽던 지역 문화가 도시재생을 통해 현대의 '감정 큐레이션'으로 구현된 것이다.

동호지구 도시재생사업으로 조성된 '바닷가 책방마을'은 지난해부터 지역의 책과 만화 정서를 살려 만화책을 들여놨고, 방문객의 기분에 따라 책을 고르는 '감정 큐레이션' 콘텐츠를 접목해 운영 중이다.
이 감정 큐레이션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당초 바닷가 책방마을은 지역의 옛 정서를 살린 만화카페형 독서공간으로 구상되어 있었으나, 2025년 10월경 『트렌드 코리아 2026』의 출간 이후 '필코노미(감정경제)'라는 새로운 소비 흐름에 주목하면서 공간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 동해시는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를 책방에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기존 구성을 보완했다.
만화책은 무기력, 화남, 불안, 우울, 위로, 현실도피 등 6가지 감정으로 분류되어 있다. 일반 서점에서 장르나 작가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지금 내 마음이 어떤가'를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운이 없을 때는 무기력, 마음이 조급할 때는 불안, 화가 날 때는 화남,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는 위로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식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도가 다시 주목받게 됐다. 올해 2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정기 강연에서 『트렌드 코리아』의 저자인 김난도 작가(서울대 명예교수)가 '필코노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동해시 바닷가 책방마을의 감정 큐레이션 사례를 직접 소개한 것이다. 트렌드에서 영감을 얻어 지역의 특색을 입힌 콘텐츠가 실제 공간으로 구현되고, 다시 그 트렌드를 보여주는 현장 사례로 소개된 셈이다.
바닷가 책방마을에는 감정 큐레이션 서가와 벙커형 독서공간 외에도 '네컷만화 그리기', '필사 체험' 등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체험 콘텐츠가 마련되어 있다. 캠핑존 콘셉트의 다목적 영상관은 독서모임과 소규모 문화활동 공간으로 활용되며 사전 예약을 통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동해시는 향후 방문객의 반응과 운영 결과를 토대로 감정 큐레이션과 체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바닷가 책방마을을 동호동의 이야기를 담은 특색 있는 생활문화 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전미애 도시정비과장은 "바닷가 책방마을은 시민에게는 자신의 마음에 맞는 책 한 권과 함께 쉬어가는 일상의 문화공간으로, 관광객에게는 동호동만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특색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